review

낯설고도 익숙한: 손으로 만드는 것의 새로운 언어

정세라(더 스트림 디렉터, 미술비평)

0.

현대미술 속에서 도예의 새로운 경향을 주도했던 신동원의 작품은 늘 어느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몇 년 사이, 신동원은 조형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기형으로서 도자에 관심을 가진다. 작가는 현대미술에서 도예는 어디쯤 위치에 있는지 자문하면서 손으로 만드는 것과 그리는 것 사이에서 진지하게, 그리고 조금은 힘을 빼고 편안해진 심상으로 작품에 접근하고 있다. 주로 신동원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으로서 생활 속 기형을 평면적으로 배열하고, 리드미컬한 흐름의 공간을 구축하는 것으로 완성했다. 그녀만의 미학적 배열과 조형미는 현대미술에서 새로운 도예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a journey #12 ▪ 221 x 114 x 8.5cm ▪ porcelain ▪ 2021

 

1.

이번 개인전에서 《a journey: 낯설고도 익숙한》에서 선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몇 년 사이, 주로 관심을 보였던 ‘수공’이라는 것의 깊이에 대해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진 듯하다. 신동원이 뜻밖에 마음을 빼앗겼던 도자 이야기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 그녀는 우리나라 보물인 ‘백자 철화끈무늬병(白磁鐵畵垂紐文甁)’의 단순한 미학적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목이 가는 호리병 모양의 백자에 한 가닥 끈을 흙갈색의 철화 안료로 휘감아 늘여 뜨려 둥글게 말린 모습으로 표현한 보물이다. 목에 끈을 매달고 있는 형태의 무늬는 마치 줄이 매달려 있는 것과 같은 해학적이면서 재미있는 환영을 보여준다. 15-16세기에 이런 작품이 있었다니 전통적인 도자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든 새로움이다. 이러한 해학은 사실 신동원 작품의 주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신동원은 공간의 질서 속에서 물질의 속성과 각 사물의 내적인 리듬에 부응하는 새로운 시각적 질서를 제시한다. 예전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자에 바느질하는 것과 같은 자수 표현을 하거나, 삼차원 공간을 이차원 평면으로 늘어놓거나 쌓아 놓으면서, 곧 옆으로 쓰러질 듯 한 위태로움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이러한 신동원만의 위트는 전통적인 도예의 결을 벗어나 ‘현대적’이라는 도예의 새로운 강한 흐름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예와 예술(미술) 사이, 그 경계에서 공예품으로서의 기능성을 배제한 신동원의 도예는 늘 새로운 미학적 세계를 보여준다.

낯설고도 익숙한 #33 ▪ 66 x 47cm ▪ porcelain ▪ 2019

 

a journey #6 ▪ 72 x 168cm ▪ porcelain ▪ 2021

 

2.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a journey'(2021)의 연작들은 리본으로 묶여져서 새로운 조형의 질서를 주로 표현한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듯한 의미를 지니는 리드미컬한 흐름의 형상은 신동원의 전작들에서와 같은 조형미를 유지하면서도 더 편안하고 유연하다. 이 편안함과 안정감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눈치가 빠른 관객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 가구를 접목한 기하학적인 형태들은 하나의 틀로서 작품의 조형미를 기획하고 프레임화하였다면, 'a journey'나 '낯설고도 익숙한'의 시리즈들은 공간과의 배치에서 조금 더 확장적이고, 부드럽다. 흰 도자의 기형은 살아있는 듯 곡선미가 강조되어 유연하고, 새겨진 파란색 꽃문양은 유명 도자 브랜드 로열 코펜하겐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함을 선사한다. 신동원은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전통 도자와 서양의 대표적인 도자 무늬나 기형을 통해 한층 친근하고 익숙함을 선사하면서 동시대적인 공예와 예술 사이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낯설고도 익숙한'(2018-2019) 연작에서 전통적인 도자의 모습에 파스텔 색조를 더하여 재기발랄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입체적으로 덧대어진 흰색의 끈 무늬, 날아다니는 나비, 국화, 대나무 등 여러 문양의 조각이 덧대어진 실험은 서양의 유명 도자 브랜드인 웨지우드의 제스퍼웨어 시리즈의 특징을 접목하여 관객의 시선을 끈다. 신동원만의 특별함은 전통적인 것을 빌려 자신만의 현대적 해석으로 새로운 조형미를 구성한다는 데 있다. 이런 그녀만의 새로운 해석은 어떤 것과 어떤 것의 ‘사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이것은 한국 전통의 철화백자로 시작해서 서양의 대표적인 도자 브랜드의 사이를 변주한다.

a journey #5 ▪ 129 x 104cm ▪ porcelain, birch plywood, paint ▪ 2021

 

3.

신동원의 도예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를 오가며 이미지를 재창조하거나 재생산된 시각으로 제시한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 특정한 순간을 사물의 어떤 모습 또는 그 모습들을 본래의 장소 및 시간에서 따로 분리해내는 사건이다. 하나의 이미지나 조형이 예술작품으로 표상되었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보는 방식은 미술과 관련해 교육받은 혹은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전제된 몇몇 관념들의 영향을 받는다. 미(美), 문명, 형식, 사회적 지위, 젠더, 취향 등으로 말이다. 과거에 신동원이 그릇이나 포도주병 모양의 도자를 여성주의 미학과 연결하고 역사적 제약이나 사회적 불평등을 재치 있게 강조했던 것을 읽어낼 수 있었던 것처럼. 그래서 우리가 마주한 그대로의 실제 세계란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우리의 의식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 문화적 가정들은 신동원의 2018년 작품부터는 공예품으로서의 도예와 예술(미술)이라는 형식에 대한 고민으로 시작하였고, 그 카테고리가 갖는 미술제도에 대한 고민과 손으로 만들어가는 감각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전통적인 도예는 대개 수공으로 제작되거나 몇몇 종류의 생산적인 노동에 종속되거나 최종적으로는 소비에 앞서 교환을 위해 생산된 것으로서 선별된다. 신동원은 미술의 생산 안에서 다른 상품화된 문화의 조건 안에 비평적 전제 조건이 있다고 보고, 미술의 상품화를 보다 심오하고 영구적인 본연의 미학적 위치에 자리매김하게 한 다음 그것을 깎아내리지 않게 한다. 15-16세기의 한국의 철화백자의 끈 무늬에서 시작한 작가의 호기심은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적시되고, 또한 서양의 18세기 명품 도자의 수공법을 접목한 형식적 실험으로 구현된다. 이 두 세계의 만남은 혼합과 병치를 오가며 조화로운 융합을 도출한다. 그래서 그 실험 과정에서 차용이나 복제의 가능성은 그 원작의 이미지가 어떠한 것인지 보여줌과 동시에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참고사항이 된다. 그러기에 신동원의 도예는 우리의 생생한 경험과 과거 시대 그리고 다른 문화적 체험 사이의 연결을 가능하게 했다. 그것은 ‘낯설고도 익숙한’ 것으로 우리와 마주한다. 신동원은 더 이상 과거의 예술을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게 한다. 대신 그 자리에 이미지의 새로운 언어가 들어섰다.

a journey #8 ▪ 68 x 61cm ▪ porcelain ▪ 2021

 

전시장 전경 ▪ Gallery Jinsun

 

전시장 전경 ▪ Gallery Jinsun

 

▪ Copyright©DONG WON SHIN ▪ All rights reserved. ▪ dwcranbr@naver.com ▪ 82·10·7221·9692 ▪